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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2011년 4월 , 후쿠시마현 미나미소마.
해일에 쓸려 나간 이 도시에는 제대로 된 건물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나라에서는 식수, 물자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고, 여러 가건물에 모인 사람들은 아직 가시지 않은 추위와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었다.
백현승은 트럭을 직접 몰고 올라온다. 트럭에는 ‘백가상사’(白家商事)라 쓰여 있었고, 친절하게도 ‘베카’라는 카타카나로 옆에 쓰여져 있다.
사실 현승은 여기까지 올 일이 없다. 백가상사의 일은 그가 직접 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그냥 오고 싶었다.
트럭 안에는 한식 도시락 수천 개가 들어 있었다. 한류의 영향으로 일본인들도 한식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든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차는 이재민들이 모인 공회당 앞에 섰고, 백현승과 그 동생 백현림은 차에서 내려, 사람들에게 하나씩 도시락을 나누어 준다.
10년 전만 해도 이런 일을 하면 야쿠자들이 나와서 난리를 쳤을 것이다. 지금도 조심은 해야 했지만, 옛날과 같은 위험은 없었다.
21년 전만 해도 현승은 이런 일을 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현림이 한국어로 묻는다. “형. “
현림의 이마에도 주름살이 조금씩 보이고 있었다.
“그래. 그 때 우리와 같이 놀던 사람들은 이런 데는 와 보지 않겠지.”
현승은 조용히 생각에 잠긴다. 21년 전 그 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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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월, 중국 헤이룽장성 우선뉴 마을.
다섯 선녀가 살았다고 해서 오선녀 (우선뉴) 마을이라 불리는 이곳은 성의 주도 하얼빈에서 200킬로나 더 가야 하는 궁벽한 곳이다.
샤오여(小葉)는 다른 농장 일꾼들이나 마찬가지로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농사일이라는 건 한겨울이라고 해서 쉬는 게 없다.
둥베이(중국에서는 만주를 둥베이라 부름)의 겨울은 매섭다. 하지만 일이 얼마나 고된지 추위도 잊을 정도였다.
그녀는 자기 몸무게보다 몇 배는 되어 보이는 손수레를 끌고 가고 있다.
“양(楊)샤오여. 부모님은 어떤가?” 농장 감독이 묻는다. “그냥 그러세요.”
아버지, 어머니 모두 병이 있어, 샤오여가 그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
“결혼식이 얼마 안 남았지?” “네.”
“자네는 훌륭한 일꾼이었어.”
그렇다. 이제 춘절(구정)이 지나면, 그녀는 자기보다 열 다섯살이나 많은 다이렌 상인의 후처로 팔려 가야 하는 신세다. 아버지, 어머니의 치료를 위해…
힘들다 .. 내일은 또 새 태양이 뜨겠지만, 가끔은 – 자다가 다시는 깨어나고 싶지 않을 때가 있었다.
이 때 누가 달려왔다. “감독님. 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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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모리는 농장의 모습을 지켜보며 한숨을 쉬었다. 아가씨가 이런 한촌에서 자라시면서 저렇게 큰 손수레를 끌고 다니시다니… 생각만 같아서는 다 쓸어버리고 싶지만, 여긴 중국이고 중국에는 중국의 법이 있다.
일단 아가씨의 신병만 확보 되면, 그 다음은 일사천리다. 누가 감히 유키(結城) 가의 유일한 핏줄을 무시할 수 있는가?
이나모리가 일본에서 같이 데려온 일행 여러 명은 무술 유단자들이다.
“아니, 당신은…”
이나모리 옆에는 구당비서가 서 있다. 구당비서가 감독에게 말한다. “양샤오여 양을 이 분이 보고 싶다시는군.”
이나모리는 이 날을 위해 중국어까지 배워 두었다. 그러니 통역은 필요없다.
잠시 후 양샤오여가 나왔다. 그녀는 살집이 적고 몸집은 품 안에 들어갈 정도로 작아 보여, 더욱더 애처로왔다. 이나모리는 그녀를 데리고 근처의 작은 헛간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나는 일본에서 온 이나모리라는 사람입니다. “
“일본에서 왜 나를 찾지요?”
“그 이유는 당신의 할아버지가 일본에 있기 때문이지요.”
“그게 무슨 말씀이시지요?”
“당신의 아버지 양칭춘, 어머니 루이하오화는 당신의 친부모가 아닙니다..”
“뭐라고요?” 샤오여는 놀라는 게 분명했다.
멍청이들은 받게 될 충격을 생각해서 살살 하라고 한다. 등신 같은 것들. 뭐든지 칠 때는 단칼에 쳐버려야 편하다. 한번에 끝장을 내야지만 모든 게 다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거야.
“그들은 아가씨를 불법으로 데려다 키웠습니다. 즉 .. 납치했습니다..”
“아니예요. 부모님이 저를 위해…”
“뭘 해줬는데요?” 이나모리가 말했다.
“나가세요. 당신 같은 사람의 말을 어떻게 믿어요?”
이 때 부하 한 명이 이나모리에게 귓속말을 했고 ,이나모리가 말한다 . “그럼 부모라고 알고 있던 사람들에게 직접 듣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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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는 만만디로 세월아 네월아 하는 공안들이다. 특히 이런 한촌에는 이렇다 할 사건이 없어 꿀보직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서장의 명령을 받고 재빨리 양칭춘, 루이하오화 부부를 잡아와 농장 바닥에 꿇렸다.
양칭춘이 말한다. “저희 부부가 무슨 짓을 했길래 잡혀왔습니까?”
“유괴범들이 무슨 말이 많아!” 공안이 대답한다.
(중국 법을 잘 모르지만, 중국에서는 법치는 약하고 권력이 강해서, 공소시효 같은 건 엿장수 맘대로 조정이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양샤오여는 밖에서 들리는 소리를 듣고 놀란다. “아니 왜 부모님이 저기 계시지요?”
“네 아비 행세 해 오던 자의 입에서 무슨 소리가 나오나 그거나 들으세요.”
루이하오화가 말을 잇는다. “저희가 아니었으면 저 애는 굶어 죽었을 거예요.”
이 때 이나모리가 나왔다. 그는 양칭춘, 루이하오화에게 말한다.
“댁들. 댁들이 좀만 우리 요코 아가씨에게 잘해 줬다면, 당신들은 상하이에 큰 저택과 일자리가 보장되었을 거야. 그런데 감히 우리 아가씨를 돈 몇천 위안에 다이렌 상인의 후취로 팔아 넘기려 했어?”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두 사람은 이나모리에게 비굴하게 빌고 있었다. 역겨운 것들. 이나모리는 더 이상 이 궁벽한 동네에 있고 싶지 않았다.
샤오여가 말했다. “아버지, 어머니, 정말 제가 아버지 어머니의 친딸이 아니예요?”
“미안하다 … 그만 우리가 아이가 없어서 네 어머니에게서 데려왔다. 네 어머니가 다시 시집가는 걸 방해하지 않게 하기 위해…”
“누가 생각해 낸 거죠?”
잠시 전까지 그녀의 어머니였던 루이하오화가 대답한다. “내가 .. 이 사람은 말리는데 내가 자식을 못 낳아서…”
이 때 이나모리가 눈짓을 하자 공안의 곤봉이 그녀의 등을 친다.
“이 년놈들 때문에 아가씨를 찾는 게 15년 이상 늦어졌습니다. 구당비서님. 유괴죄의 처벌이 뭡니까?”
“총살형.” 구당비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한다.
“살려만 주십시오.. 제발. 우리는 모두 다 좋게 하게 하기 위해…” 양칭춘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샤오여는 공황상태에 빠진 듯 움직이지 않는다. 불과 20여분 사이에 그녀의 생은 180도 바뀌었다.
“자. 어떡하시겠습니까? 저를 따라 가시겠다면 제가 선처를 호소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 말을 안 들으시겠다면, 이틀 후 총살형이 집행될 겁니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시기에 한순간에 우리 가족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거지요?”
“말로만 하면 못믿습니다. 일단 도시까지 가야 하겠습니다. 타시죠.”
양칭춘 부부는 계속 떠들면서 말한다. “살려 주십시오. 아가씨가 그렇게 대단한 분의 자식인 줄 알았으면 우리 같은 것들이 손도 대지 않았을 겁니다…”
“자. 저 사람들이 즉결재판을 받고 이틀 후 사형 당하시는 걸 원합니까, 아니면 하얼빈으로 이송해서 제대로 재판해서 선처를 노리시는 걸 원합니까? 선택은 지금 하셔야 합니다. 저 사람들이 일어나기 전에.”
공안들은 두 사람을 일으키려 하고 있었다.
“좋아요. 일단 한번 가 봐요. 그 대신 내 허락없이 부모님을 해친다면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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